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(문단 편집) == 사망과 사후 == 하지만 이런 우상화 속에서도 그는 [[암살]]을 두려워해 삼엄한 [[경비]] 속에서 지냈는데, 이는 [[2002년]] 11월 25일에 니야조프가 사저에서 대통령궁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행렬을 향해 총탄이 날아온 적이 있던 것의 영향이다.[* 다만 이 암살 기도에서 니야조프는 어떠한 부상도 입지 않았다.] 니야조프는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가 실패하자 공모 혐의자(전직 외무장관 2명과 참모총장 1명도 포함)와 이들의 가족들까지 합해 [[2016년 튀르키예 쿠데타 미수|수천 명을 대규모로 체포하는 무자비한 보복을 했고]],[* 이때 피고들은 '스탈린풍의' 재판이 TV로 중계되는 재판을 거쳤다고 한다.] 투르크메니스탄의 최대 징역형도 이 무렵에 25년형에서 종신형으로 변경되고는 피고들에게 소급적용되었다. 다만 이 암살 미수 사건은 니야조프가 반대파 탄압을 위해 벌인 자작극이라는 설도 있다.[* 의미심장하게도 투르크메니스탄의 악명 높은 정치범수용소 오와단 데페(Owadan-depe) 감옥 건설이 시작된 시기가 바로 이 암살 시도 직전이었다고 한다.] 그러나 니야조프는 아이러니하게도 [[이오시프 스탈린/생애#s-10|철저한 경비로 인해 심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했고]] 결국 이로 인해 [[2006년]] 12월 21일 새벽 1시 10분에 향년 66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이전부터 앓던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.[* 니야조프의 죽음에 대해서는 당시 2인자였던 [[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]]가 보다 못해 일부러 응급조치를 못 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.] 니야조프의 장례식은 니야조프의 사망 3일 후인 2006년 12월 24일에 열렸는데, 대통령궁에 니야조프의 관이 전시되었을 때 많은 투르크메니스탄의 시민들은 극적으로 운 것은 물론(?) 니야조프의 관에 매달려 기절한 사람까지 있었다고 한다. 어쨌든 니야조프는 고향 마을에 있는 돔 모양의 거대한 영모에 안장되었다. 그가 죽고 나서 2인자이던 [[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]]가 정권을 잡았는데, 베르디무하메도프는 처음에는 일반인의 [[인터넷]] 사용과 [[다당제]]를 허용하는 등 어느 정도 유화책을 펼치는 것처럼 보였어도 니야조프 못지 않게 괴상망측한 기행을 일삼고 다니는지라 투르크메니스탄의 독재와 인권 탄압은 사실상 달라진 게 없다. 그리고 베르디무하메도프도 2022년 3월 19일에 사임하고는 대통령직을 아들인 [[세르다르 베르디무하메도프]]에게 기꺼이 세습했으나, 실제로는 뒤에서 인민평의회 (상원) 의장을 역임하면서 실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한다. 우습게도 생전에는 그다지 국제적으로 알려지지 못했고, 오히려 죽은 다음에서야 더 국제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인물이었다. 그 이유는 기행을 저질렀어도 [[미국]]이나 [[러시아]]에게 대들지 않으며 외교에서는 중립 노선을 유지했기 때문에 미국 언론에선 [[우고 차베스]]랑 다르게 살아 생전 그를 그다지 비난하지 않았던 데다 옆나라 우즈베키스탄의 [[이슬람 카리모프]]나 타지키스탄의 [[에모말리 라흐몬]]처럼 폭력적인 탄압은 가급적 피하려고 하는 등, 적당히 서방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.[* 사실, 미국은 [[그 개새끼는 우리 개새끼]]의 논리대로 [[반미]] 성향을 보이는 독재자들은 탄압하지만 (주로 [[남미]] 등지에서) 친미, 반공 성향을 보이는 독재자들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반미 감정을 가질 정도로 지나치게 막 나가지만 않으면 관대하게 침묵하거나 지원해준 이력이 많다. 이것의 극단적인 폐해를 보여준 것이 [[아르헨티나]]의 [[더러운 전쟁]]이다.] 이는 베르디무하메도프가 친러시아적인 태도를 보인 탓에 미국 우익언론이 독재자라고 신나게 보도하던 거랑 대조적이다. 니야조프는 국제적으로 딱히 도발을 한 건 없으며, 자국민을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천 단위로 학살하거나 수십만 단위로 수용소에 넣지도 않았고[* 1999년에 투르크메니스탄은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했고, 사형제가 폐지되기 전에도 사형 집행은 흉악범을 제외하면 일단 소극적이었다. 일단 마지막 공식 사형 집형 년도는 1997년. 다만 전술한 것처럼 정치범들을 만 단위로 수용소에 넣기는 했다.], 복지정책도 상당히 잘 펼쳤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상태로 장기집권한 독재자치고는 의외로 괜찮은 녀석이었다는 평가이다. 물론 어디까지나 니야조프 본인이 학살을 안했을지언정 교도소 수준이 과장 좀 보태면 '''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준하는 수준이기에'''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과 고문 속에서 사망한 정치범들은 적지 않다고 한다. 당장 러시아만 해도 사형 유예이지만 교도소에서 의문사한 죄수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. 하지만 이 인간과 비슷한 수준의 독재권력을 지녔던 [[폴 포트]], [[이디 아민]], [[로버트 무가베]], [[장 베델 보카사]] 같은 독재자들이 체제 유지를 위해 민간인에 대한 [[대량학살]]([[제노사이드]])을 저지른 경우를 생각하면 얘가 정적들을 감옥으로 보내서 죽인 건 '비교적' 온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. 이 인간은 위의 [[제노사이드]]를 저지른 독재자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경찰력과 군부의 통솔권을 완전히 지배했기 때문에 원한다면 학살을 저지를 수도 있었지만[*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여러가지가 있는데, 피지배인들에게 [[분할통치|소수민족과 같은 공공의 적을 만들어 증오의 대상을 지배자에서 다른 대상으로 옮기거나]] 비논리적인 [[학살]]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일으켜 반대세력의 탄생을 막는 것이 뛰어난 정책을 통해 사회 만족을 이루는 것보다 쉽다.] 일단 그런 짓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. 그래서 지금도 투르크메니스탄 국민들은 니야조프에 대해 딱히 큰 악감정은 없으며[* 현재 베르디무하메도프가 저지르는 행각도 우상화를 제외하면 니야조프보다 딱히 낫다고 할 수도 없으므로 더욱 그러며, 덤으로 베르디무하메도프는 마지막에는 기꺼이 '''아들에게 권력 세습을 하고야 만다.'''], 국제적으로도 그저 제 안방 안에서 오로지 권력과 숭배만을 탐한 기인, 이상한 괴짜 정도로만 평가하고 있다. [각주] [[분류:아시아의 독재자]][[분류:소련 공산당 28기 정치국 위원]][[분류: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]][[분류:1940년 출생]][[분류:2006년 사망]][[분류:아시가바트 출신 인물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